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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이면 12월!' 계엄 자체만으로도 분노할 이유가 충분하나 계절까지 탓하게 된 것은 지난 두 달여 간의 퇴진광장이 너무 추웠고, 추위가 광장의 몸들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철야집회였습니다. 참가자 한 명이 오들오들 떨며 의료부스에 찾아왔습니다. 체온을 재어보니 너무 낮았습니다. 몸을 충분히 녹이고 증상이 나아질 때까지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따뜻한 공간에 들어가서 좀 쉬시라 이야기해 보았지만, 난방버스에 들어가기에는 투지가 너무 뜨거웠나 봅니다. 그는 이내 다시 대오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다음 철야 때였습니다. 또 그 사람이 오들오들 떨면서 찾아왔습니다. 너무 춥게 입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혀를 끌끌 차며 핫팩을 쥐여 주고 난로 청약예금 및 청약부금 앞에 앉게 했습니다. 그다음 철야였습니다. 또 그 동지가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따뜻하게 입은 것 같긴 했지만 힘들어 보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주치자마자 서로 허허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이 담배를 태우러 가자는 게 아니겠습니까? 잠시 망설이다가 따라나섰습니다.
'내가 한 일을 의료지원이라 불러도 될까?' 마음속 대답은 간이사업자 등록 '아니다'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달리 더 좋은 선택이 있었을까요. 그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마다의 몸의 역사를 새긴 채 광장에 나온 이들
앓는 몸 이끌고 매주 광장으로 나오는 사람, 자전거 타고 집회장에 달려오다가 얼굴이 바닥에 쓸리고도 그대로 집회로 달려온 따릉이 라이더, 깃발을 열심히 흔들 근로기준법 유급휴가 다가 손을 다친 깃발행진 참가자, 핫팩으로 저온화상을 입은 철야집회 지킴이, 윤석열이 아프면 절대 치료해 주지 말라는 비밀지령(?)을 내려 주시는 암환자… 이렇게 몸의 역사를 새긴 채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의료부스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광장의 천막일 뿐인 의료부스에서 할 수 있는 '의료행위'는 많지 않습니다. 물론 응급상황에 은행 대출 서류 대처하는 일도 간혹 벌어지지만, 대체로 의료부스의 존재 의의는 광장에 누가 어떤 몸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었는지를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광장에 나온 몸들을 만나는 일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의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의료행위 하나하나에 가격표가 달려 있고, 그 거래 관계가 사람들을 갈라놓는 한국의 병원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요 취등록세 계산기 .
연대로 환하게 빛나는 돌봄, 그리고 투쟁
시민들이 광장에 나오는 것은 현재진행형인 쿠데타를 막아 서로를 지키고자 하는 거대한 '돌봄'이고 의료부스는 그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광장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주체는 의료지원팀의 의료진들만이 아닙니다. 광장의 시민들이 연대로서 돌봄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이 관저에 있던 시절 한강진 체포 철야투쟁 때, 인근 건물 화장실에는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생리용품, 가글, 휴지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의료부스에는 수많은 상비약, 담요, 핫팩, 간식 나눔이 쏟아졌습니다. 광장 시민들의 잠재력을 이런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장면들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네 것과 내 것을 구분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 쓸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에서 말입니다.
또 한 가지 놀란 것은 선전전을 하면서였습니다. 의료지원팀은 윤석열이 그간 추진해 온 의료민영화를 중단하고, 공공의료로의 전환을 쟁취하자는 선전전과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명판을 두고 가만히만 있어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서명을 해 주시곤 합니다. 짧은 저의 경험 속 선전전이란 무안함을 무릅쓰고 무심한 행인들을 붙잡아야 하는, 고강도 감정노동을 수반하는 체력전이었었는데!

그러나 지금의 광장은 다릅니다. 선전물을 들고 가만히 있는데도 먼저 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 심지어 어디서 들으셨는지 서명운동을 하러 일부러 찾아오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학교'라는 말처럼, 계엄 이후 열린 곳곳의 광장은 모두가 투쟁하는 법을 배우는 학교가 되었나 봅니다.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시민들에게 서명 따위는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  2024년 12월 3일 계엄사태 이후 윤석열 퇴진광장 의료부스로 출근하고 있다. 12월 14일 여의도 의료부스 풍경.


ⓒ 이서영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일터>에 글을 나누자니 희망을 발견했던 순간들을 주로 적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넓었다니,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했던 순간들이요. 그러나 이렇게 벅차고 감동적인 장면과 나란히, 혹은 더 크게 느껴지는 무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운 새벽에도 투쟁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마음들을 모아,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범시민대행진'의 차수가 쌓여 갈수록, 어느새 3월이 다가와 추위가 가실수록 제 마음속에 점점 더 커지는 질문들입니다. '반도체특별법'을 둘러싼 보수양당의 각축전을 지켜보는 요즘, 광장의 감동이 주었던 무게만큼 마음이 무겁습니다.
찝찝하게 글을 끝내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는 진료실이 아니라 해방광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보내는 편지를 쓸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